[공지] 상명포토아카데미 고급반 전시회 안내
- 작성자 평생교육원
- 작성일 2020-02-11
- 조회수 8577
준비된 우연 ● 사진은 매우 기계적이다. 조리개, 셔터, 초점거리, 화소수, 노출, 앵글 등 그 어느 것 하나 설정된 값대로 찍히지 않는 경우가 없다. 그런데 피사체는 그렇지 않다. 피사체는 사진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놓여있다. 사진에 찍혀지는 모든 대상은 사진가의 의도를 무시한다. 그런데도 사진가는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대상을 제어하려 한다. 이런 모순된 상황에서 사진가는 고민에 빠진다.
준비된 우연
권진숙_나영자_박재남_원종보_이동주_이환준_이현정展
2020_0207 ▶︎ 2020_0216
초대일시 / 2020_0207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공휴일_11:00am~06:00pm
갤러리 브레송GALLERY BRESSON서울 중구 퇴계로 163(충무로2가 52-6번지) 고려빌딩 B1Tel. +82.(0)2.2269.2613
사진의 대상이 통제 밖을 벗어나 있는 상태에서 사진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사진가들은 대체로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끊임없이 회의한다. 작품의 내용적 측면에서 사진가는 자신이 주체적으로 작품의 내용과 의미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창작자의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작품의 가치판단을 내리려 한다. 하지만 그는 늘 실패한다. 왜냐하면 '의미'는 사진 속에 없다. 의미는 어떤 맥락 속에서 결정되는 상호 텍스트적인 기호의 구조로 되어 있을 뿐 사진가의 머릿속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 그래서 의미는 이미 주어졌거나, 나중에 덧붙여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의미'의 결정은 관객이 부여한다고 봐야한다. 즉, 관객은 이미 주어진 사회에서 기호화된 의미가 결정되어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것들을 가져다 쓰는 것뿐이다. 그러니 사진가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 작품에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진가의 결정은 논리적으로 의미를 따지기보다는 매우 직관적으로 판단한다. 그는 촬영 순간에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것은 시간상으로 촬영 순간이 짧아서가 아니라 의미의 발생구조 자체가 사진가의 인식 판단으로 내릴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감정적 지각 상태에서 '이것은 좋다'라고 대상에서 느낄 때, 셔터를 누를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러니깐 사진가는 수많은 미결정의 불안한 상태에서 판단하는 주제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데도 사진가가 자신의 작품이라고 내놓는 이것은 무엇인가? 따라서 사진가는 작가로서의 삶은 주장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작업이 주체적인 판단의 결과물임을 입증하기 위해서 자신 앞에 놓인 모든 우연의 산물이 필연적으로 준비된 것에서 온 것처럼 위장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은 자기 기만에 빠지는 행위다. "준비된 우연" 이것은 말이 안 되는 형용모순이다. 그래서 굳이 사진가에게 작가라는 호칭은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전통적인 작가의 개념을 사진은 무너트린다. 사진이 동시대 현대예술에서 중요한 미학적 가치를 부여받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작가는 의미를 결정하고 만드는 창작 주체의 자리를 비운 지 오래되었다. 이와 같은 특성은 사진 그 자체에 가지고 있었으나 이를 알아차린 것은 최근에 일이고, 모더니즘 사진은 물론 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아 늘 극복의 대상이었다. ● 동시대 예술로서의 사진은 사진가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이 매체로써 사진의 고유한 특성들을 사용했다. 그 결과 사진은 현대예술로 진입했고, 동시대 예술의 특징과 성격을 규정했다. 따라서 사진이 왜 그리고 어떻게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는지를 자문하고, 예술로서의 사진에 적합한 방법을 찾는 것은 사진가의 몫이 되었다. ■ 이영욱